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

마리아의 종의 향기


 
  나는 착한 목자이다 - 바칠리에리 신부님에 ...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15-03-27     조회 : 4,797  
 첨부파일 :  quaderni_di_galeazza__tempo_di_liberta_pag._17-20.hwp (34.5K) [0] DATE : 2015-03-27 21:09:47

quaderni di galeazza tempo di liberta` liberta` e futuro Pag. 17 -20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 이제 내 양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그리고 나도 내 양 떼를 보살피겠다...나는 공정으로 양 떼를 먹이겠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통해 목자의 역할을 자신을 위한 독점적인 권리로 인수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양떼를 맡기신 사람들이 양떼를 보호하지 않고 억누르고 학대하고 착취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당신이 목자 역할을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 말씀 안에서 이 상황에 대한 메아리를 찾습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배타성의 성격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 혼자”: 나보다 먼저 온 모든 사람은 강도와 도둑이다. 그리고 잘난체 하는 목자, 뻔뻔한 목자의 배경 앞에 이것을 매우 명백하게 하십니다. : “나 홀로 착한 목자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복자 페르디난도 마리아 바치릴에리의 축일을 지내고 있나요?

예수님만이 우리의 목자이고, 예수만이 우리의 선생님, 우리의 인도자이십니다. 그러나 성인들 안에서 우리는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주님이시며, 홀로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님”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성덕의 특별한 표현을 경축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온전하게 존재하는 완전성의 무엇인가가 성인들 안에서 빛납니다.

복자 페르디난도 신부님 안에서 그의 백성을 향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염려가, 고유한 방법으로 육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인들 안에는 단순하게 그들 개인적인 특성들, 그들의 재능들, 그들의 성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 안에 유일한 방법, 독특한 방법으로 표현된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성인들의 삶을 비추는 동시에 성인들의 삶은 그리스도를 조명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성인들의 삶 안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동시에, 성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더 이해하도록 우리를 돕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 대해서 살아있고 구체적이고 완성된 실현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서에서 본인이 실행한 대담한 큰 행동처럼 복음 선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용기를 얻어 격렬히 투쟁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이 본당 안에서 복자 페르디난도 신부님의 사명의 시작을 상기하게 합니다.

무수한 증거들이 그분이 처해 있던 영적이고 물질적인 가난의 상태를 기억하게 합니다. ; 우리는 며칠 동안만 이곳에 와야 했던 사제로서, 그분의 도착도 불안정했음을 기억합니다. ; 그분의 공동체에서 긴 기간 동안 부재하도록 그를 강요할 만큼 위태로웠던 약한 건강을 상기하게 합니다.

그분은 격렬한 투쟁 사이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 선포의 힘과 효과를 인간적으로 반대되고 그 자체로는 복음 선포에 맞지 않는 조건들 안에서 보여주는 주님의 만족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노고와 숱한 투쟁은 “하느님의 복음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생명을 바치기로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토록 우리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그분에게 맡겨진 양들에 대한 상냥함, 다정함 등의 목자의 모성적인 특성을 높였습니다. “복음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뿐만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역설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복음을 주면 모든 것을 주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오직 복음만을 주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복음과 더불어 자신의 생명도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 그분이 먼저 우리를 향해 하셨던 것을 모방하도록 촉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부터 복자 페르디난도 신부님의 교육적 활동, 교리 활동, 인격 형성 활동을 생각해 냈습니다. 신부님의 사랑의 힘은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님께서 원하셨던 것처럼 되도록 하고, 예수 그리스도이신 그들의 모상의 충만함에 이르도록 많은 사람을 성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우리가 들은 다른 초대, 우리를 복자께로 인도하는 다른 윤곽이 여기 있습니다.

<<너희들은 모두 형제이고, 한 분이신 아버지의 모두 자녀들이고, 한 분이신 스승의 모두 제자들이고, 한 분이신 지도자 그리스도로 인해 모두 인도된다.>> 여러분의 스승은 한 분 뿐이고, 여러분의 아버지도 한 분 이시며, 여러분의 지도자도 한 분이십니다. 유일한 선물의 참석자로 자신을 생각하는 공동책임에로의 큰 초대입니다. 우리를 부르셨던 주님의 활동으로 우리자신을 의미 없고 부수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큰 초대입니다.

우리의 생명과 우리 공동체, 우리 봉사와 증거의 일치를 그리스도 안에서 되찾도록 하는 큰 초대입니다. 우리가 알려드릴 분은 그분이시고 우리가 형제들을 인도하는 것은 그분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이고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것은 오직 그분의 주위에서입니다. 누구든지 여러분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면 가장 작은 사람처럼 되어야 합니다.;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입니다. 이렇게 복자 안에서, 모든 이들에게 봉사하고,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낮추면서 다른 이들의 아래에서 그들을 높이도록 자신을 내어 놓는 기쁨을 통한 봉사가 요구가 없고 이윤이 없고 , 불순한 동기가 없는 봉사로 겸손의 덕이 빛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봉사를 그분은 마리아의 종 가족에게 유언과 유산으로 주셨습니다.: 마리아와 함께, 마리아처럼, 마리아의 종들입니다. 이 땅에서 그리고 여기에서부터 먼 지역에까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외국에까지도 했던 값진 선물입니다. 봉사 안에 증거의 값진 선물입니다.: 헌신하고 기대하지 않고 그냥 했고 감사의 표시를 위해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녀가 감사하다고 말하면 깜짝 놀라는 어머니의 봉사입니다. 자신을 선물로 주도록 촉구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다한 노력을 최소로 여기는 봉사입니다. 그러나 별개 아니라고... 정신, 마음, 행동으로 자신보다 먼저 다른 이들을 앞세우는 봉사입니다.

 

오늘, 페르디난도 신부님에 대하여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보다, 이 여성적인 방식입니다.; 그분의 카리스마의 첫 번째 상속자들은 그분의 딸들입니다. 그분의 부성은 모성처럼 여성적인 것에로 변형됩니다. 그리고 이 가족은 이러한 뜻으로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의 돌봄, 어린이부터 청소년, 청년과 성인에 이르기 까지 여성으로의 특별 교육은 교회 안에 여성으로의 의무, 위치를 증거 하는 고유한 성소입니다.

교회 안에서 여성에 대한 말을 듣는 것도 좋습니다.

매우 유명하고, 약간은 급진적인....“Noi donne" 라는 잡지는 올해로 70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교회를 “우리 여성”이 라고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성적 차원이 있고, 교회는 친절하고 상냥한 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돌보고 양육하는 어머니처럼 이렇게 여러분에게도 애착을 품습니다. 이제, 자매들, 마리아의 종 수녀님들, 여기 참석하는 모든 자매들,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모두를 도와주고 자신의 여성적인 성소를 재발견하도록 교회 전부를 도와주십시오.

교황님은 사랑하고 사려깊은 어머니이신 교회에 대해서도 많은 아름다운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미 요한 교황님은 어머니와 스승인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어머니라서 스승입니다. 이 세상에 부드러움, 애정, 연민, 가까움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그리고 교회의 모성적 본성을 통하여 복음의 얼마나 큰 부분이 통과합니까? 이제 우리는 복자 페르디난도 신부님의 중재를 통해서 주님께 이 은총을 청합시다.

교회 안에서 아무도 일 없이 있지 않고 아무도 순수하게 받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않고 주님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자가 되기 위해서 그분은 많은 힘을 투신하고, 많은 단체들을 설립하셨습니다. 그분이 선구자가 되신 복음화 활동 안에 우리 모두가 협조자로 자신을 느끼도록 주님께 청합시다. 그것은 주로 큰 연민과 인간에 대한 큰 호감으로 무장된 교회입니다. 사람들을 향한 호의를 갖도록 노력합시다.

복자 페르디난도 신부님을 시복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거기에서 교황님의 설득력은 만났던 이들을 위한, 사람을 위한 큰 호감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악인일 수도 있지만, 그분이 생각한 것은 그가 저지른 나쁜 일들, 그가 말한 어리석은 말 그 이상으로, 교황님은 그 사람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을 위한 호의를 지니셨습니다. 그리고 교황님이 젊은이들을 위한 큰 애정과 큰 동정심을 가지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멋있고 강하고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호의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을 필요 없는 이들처럼 다룰 위험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우리가 사회를 바꾸기 위해, 회복시키기 위해서, 가장 필요 할 텐데도 , 그들에게 말로는 아니지만 대단한 설득력과 분명한 행동으로 “너희들이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위한 비극이고 우리나라를 위한 비극입니다. 우리 추기경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얼마나 자주 기억하게 하십니까. 우리가 어떤 때 조금 주저 않는 자살적인 경향을 헐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복자 페르디난도 신부님이 교육적인 열정, 큰 직관력, 현 순간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의 백성의 선과 성장을 위해 실천하도록 필요했던 것은 우리가 현재 순간에 의식해야 하고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여 실천해야 할 증거입니다.

                              Giovanni Silvagna 몬시뇰 볼로냐 교구 총대리